? 금주요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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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성전을 사모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1-2)

하나님 향한 갈망은 성전을 향한 사모함으로 드러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1,2절) 주의 장막이 사랑스럽고 그리운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장막”(tabernacle)으로 번역한 단어는 히브리어로 “미쉬칸”입니다. 직역하자면 ‘거처’(dwelling place)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추석이 다가옵니다. 고향이 그리운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계시는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 42:1,2)

나아가서 뵈옵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전을 사모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Ⅱ. 예배를 사모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3-7)

시편 137편의 시인 역시 성전에서 수금을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던 레위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망해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수금을 연주해 보라, 시온의 노래를 불러보라 합니다. 시인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랴 말하며 거절합니다. 이는 예배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배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하는 것임을 말한 것입니다. 이어 말합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 버릴 것이다...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시 137:5,6/ 공동번역) 잊을 수 없는 예배, 멈출 수 없는 예배를 말합니다. 오늘 시인도 고백합니다.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3,4절) 나는 순서를 따라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데 성전에 둥지를 틀고 사는 너희는 늘 주님을 예배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랴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를 사모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Ⅲ. 은혜를 사모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8-12)

두 종류의 삶이 있습니다.

위의 것을 구하는 자, 땅의 것을 구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 땅의 것은 세상이 주는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달콤한 것을 약속하지만 결국 우리를 파괴합니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잠 5:3-5) 사지(死地), 곧 죽음입니다. 오늘 시인은 위의 것을 구합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8,11절) 하나님을 구하고, 그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구합니다.

그 은혜는 우리를 살립니다. 우리를 복되게 합니다.